유아기는 아이가 점점 자기 감정을 느끼고,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말로 자기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아직 언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속상할 때 “몰라!”, “싫어!” 같은 말로만 퉁명스럽게 반응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경우도 많죠.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왜 화났는지 말해줄래?”, “무슨 일 있었는지 말해봐”라고 물어도 아이는 고개만 흔들거나 울기만 할 뿐입니다.
이럴 때 말이 아닌 다른 방법, 즉 그림이나 놀이를 통해 아이의 감정을 꺼내주는 창의적 접근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의 감정표현을 그림과 놀이로 끌어내는 창의적 방법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그림으로 감정을 시각화해보기
유아에게 감정을 묻는 대신, “그럼 그림으로 그려볼까?”라고 제안하면 아이는 훨씬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감정을 나타낼 때 말로 설명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풍부한 표현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색깔로 감정 그리기: “지금 기분을 색깔로 그려볼래? 슬플 땐 어떤 색? 화날 땐 어떤 색?” 아이가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선택해서 색을 칠하게 하면, 부모는 색깔을 통해 아이의 정서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 친구 그리기: “네 마음 속에는 어떤 친구가 있어? 오늘 하루 동안 기분은 어떤 친구였어?” 이런 질문은 아이에게 상상 속 인물로 감정을 투영하게 도와줍니다.
화난 마음 괴물 그리기: 화가 많이 난 날은 “네 화난 마음이 괴물이라면 어떻게 생겼을까?”라고 물어보세요.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화를 외부의 대상화된 존재로 바라보고, 감정을 정리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부모는 아이에게 “이건 무슨 그림이야?”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역할놀이와 몸놀이로 감정 풀어내기
그림이 시각적 표현이라면, 놀이는 아이에게 감정을 몸으로 풀어낼 기회를 줍니다. 특히 유아들은 언어보다 몸을 쓰거나 역할을 바꾸어보는 방식에서 훨씬 더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역할놀이: 아이가 부모, 교사, 친구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평소 겪었던 감정을 재연해보는 놀이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유치원에서 속상했던 일이 있다면 인형을 가지고 “선생님 역할 해볼래? 나는 친구 역할 할게”라고 하며 놀이를 시작해보세요. 아이는 자신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놀이 속에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감정 게임: “지금 기분을 동물로 표현해볼까? 화난 사자, 슬픈 거북이, 신난 토끼는 어떻게 움직일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세요. 아이는 자신의 정서를 동작과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 폭발 놀이: 분노나 좌절 같은 강한 감정을 가진 아이에게는 “화난 쿠션 때리기”, “종이 찢기”, “베개 싸움” 같은 신체 활동 놀이가 좋은 감정 해소 통로가 됩니다. 부모가 안전하게 지켜보며 허용된 공간에서 분출하도록 도와주면, 아이는 억눌린 감정을 건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놀이를 마친 후에는 “어땠어? 좀 속이 시원해졌어?” 같은 질문으로 아이가 자기 감정을 인식하도록 돕는 마무리 대화도 중요합니다.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환경 만들기
그림과 놀이를 잘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해도 엄마 아빠가 나를 혼내지 않고 들어줄 거야”라고 느낄 때 비로소 자기 마음을 꺼내보일 수 있습니다.
부모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의 감정 표현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평소 감정 표현에 관심 가지기: 하루 중 잠깐이라도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속상했던 일은 있었어?” 같은 질문을 해보세요. 감정을 묻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면, 아이도 점점 더 마음을 열게 됩니다.
감정을 비난하거나 해석하지 않기: 아이가 강한 감정을 표현할 때 “그건 잘못된 거야”,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같은 말은 금물입니다. 아이의 감정은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아이의 방에 감정 표현 공간 마련하기: 작은 화이트보드, 감정 카드, 낙서장 등을 마련해두고 아이가 혼자서라도 자기 기분을 그리거나 표시해볼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는 자신만의 감정 표현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안정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림과 놀이로 감정을 꺼내는 작업은 더욱 자연스럽고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림과 놀이는 아이의 마음 창입니다
유아기는 감정이 크고 복잡한 시기지만, 말로 자기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부모가 그림과 놀이 같은 창의적 방법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끌어내려 노력할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더 건강하게 인식하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이가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말없이 혼자 있지는 않았나요? “왜 그래?” 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우리 그림으로 한번 그려볼까?”, “같이 놀면서 얘기해볼래?”라고 다가가 보세요. 부모의 다정한 시도는 아이에게 큰 위로와 안정감을 주고, 부모-자녀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줄 것입니다.